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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성찰(암흑의 핵심)과 사학과 -연세대학교 윤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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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4회 작성일 18-06-2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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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성찰

-<암흑의 핵심>과 사학과-

                                                                                                          연세대학교 윤종서

 

입시에 있어 염두에 두어야할 점은 수험생의 적극적인 태도를 전제로, 지원하는 학과에 대한 학생의 적합도를 스스로 설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대학 측은 허리를 굽혀 수험생에 대해 먼저 묻지 않고, 정해진 제도 내로 수험생을 흡수시킴으로써 적합한 학생을 선별합니다. 이 점이 입시제도가 견지해야 할 최소한의 ‘출발선에서의 평등’이기도 하죠. 결국 수험생에게 주어진 제도, 즉 수능성적, 자기소개서, 면접 등을 수험생이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것만이 수험생이 할 수 있는 최선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수험생들이 체감하고 목격해왔듯이, 제도의 평등이 개개인의 경험의 평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인즉슨,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만한 기회부터 균일하게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것은, 대학교가 바라는 인재가 단순히 많은 경험을 서술 혹은 구술할 수 있는 학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작고 평범한 경험이라도 더 깊고 우직하게 감상할 수 있다면 그 수험생은 오히려 대학이 바라는 인재상에 가까워집니다.

 

앞으로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 인용하기에 좋은 책과 영화를 소개하는 글을 쓰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인용”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고민”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이유에서입니다. 뿐만 아니라 좋은 작품들을 추천하고 고민해볼 만한 주제들을 제시해줌으로써 입시로 매일을 바쁘게 사는 수험생들의 시간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이유도 있습니다. 또한 그 대상을 책과 영화로 제한하는 것은 농어촌의 수험생에게도 높은 접근성을 가진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기고할 때마다 책 혹은 영화 작품을 하나씩 추천하고 관련된 학과를 함께 언급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학과 사이의 경계가 점점 더 불분명해지고 다양한 소양이 요구되는 시기인만큼 수험생이 희망하는 학과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결이 비슷한 내용이라면 작품을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글에서 처음으로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이라는 도서입니다. 그리고 저는 특별히 “사학과”를 지원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본 작품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암흑의 핵심>은 암흑의 심연, 어둠의 심연 등으로도 해석되고 있듯이 원제는 Heart of Darkness입니다. 본 작품은 19세기 말 아프리카 콩고의 흑인들을 착취하는 유럽인들의 모습을 다룬 소설입니다. 주인공 ‘말로’는 상아를 수집하기 위해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한 유럽의 선박에 몸을 싣고 콩고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먼저 진출한 백인들과 원주민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이야기를 이미 아프리카를 떠난 시점에서 회고하는 형식으로 본 소설이 서술됩니다.

 

주인공이 말로이지만 주목해야 할 인물은 ‘커츠’입니다. 커츠는 서구가 아프리카로 진출하던 초기에 상아 수집을 위해 콩고로 떠난 인물입니다. 그는 한 때 흑인들을 교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백인들 사이에서는 상아 수집을 잘 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서부터 커츠는 아프리카의 한 깊은 마을에서 상주하며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말로는 콩고에 도착한 이후로 여러 백인들로부터 커츠에 대한 무성한 소문들을 듣고 마침내 커츠를 만납니다. 그리고 커츠를 데리고 그 마을에서 빠져나옵니다.

말로가 만난 커츠는 한 아프리카 부족의 신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는 그들 위에서 군림하고 있었고 그들을 착취해서 꾸준히 최상의 상아를 얻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 단순히 커츠를 잔혹한 식민주의자라고 폄하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소설의 시점인 말로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며, 그렇다면 말로는 왜 다른 백인들보다 커츠를 더 이해하려고 했을까요?

 

그 이유는 먼저 작품의 제목인 “암흑의 핵심”에 천착하여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암흑은 무엇일까요? 소설을 읽어내려 가면 말로가 커츠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 점점 더 음산해지고 어두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듯이, 암흑은 아마 커츠가 신으로 군림하고 있는 공간을 의미할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를 선과 악으로 구분하고 암흑을 악으로 대입하여 생각하는 것이 작가가 바라는 것일지는 의문입니다.

 

여기서 고민을 해봐야하는 부분이 또 있습니다. 말로가 커츠를 데리고 나오는 선박 안에서 커츠는 ”무서워라! 무서워라!”, 영어로는 “The horror! The horror!”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추측하기 힘든 커츠가 마지막 ‘공포’라는 단어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소설에서는 그 답을 내려주지 않고 독자에게 도리어 묻고 있습니다. 식민지를 착취하는 제국의 한 백인이 신이 되면서까지 흑인들에게서 이익을 취하면서 혹은 살아남으면서 느꼈던 공포심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후대의 뭇 비평가들은 여러 지점에서 본 작품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결국 식민주의자에 지나지 않는 커츠를 미화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또한 작품 내에서 흑인들의 삶과 문화가 미신적이고 미개한 모습으로 서술된다는 점도 비판 받았습니다. 하지만 본 작품이 제국주의가 시작되는 1899년에 연재되기 시작되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대단히 반성적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커츠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식민주의를 어떻게 고민해볼 수 있을까요. 다시 한 번 더, 그 공포란 무엇을 상징할까요?

 

저는 수험생 여러분들이 먼저 작품을 읽고 그 공포에 대해 고심해보기를 바랍니다. 말로의 입을 통해 묘사된 커츠의 삶을 찬찬히 반추해보면 공포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흑인을 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상아를 무자비하게 수집하는 냉혈한의 모습을 보였다가, 원주민들의 신이 되었다가, 죽음을 앞두고 공포라는 유언을 남기기까지의 삶을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고민한 공포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본 작품을 읽고 동료들과 식민주의에서 비롯한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식민주의적 형태의 착취관계를 어떻게 해체할 수 있을까부터 그 관계에 있어서의 약자는 발언권을 갖는가까지 토론을 진행해나갔습니다. 하지만 그 중 한 친구는 왜 우리는 이런 주제로 토론을 하면서 당장 눈앞의 착취당하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하지 않느냐고 질문했습니다. 다시 말해, 성범죄의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는 삶을 사는 여성들, 고용알선업체의 매개로 임금문제를 겪는 청소년노동자들, 비장애인 위주의 제도 구성으로 불편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장애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왜 우리는 입에 올리지 않고 있는지를 물은 것입니다.

 

그 질문을 들었을 때 제가 느꼈던 감정은 다름 아닌 ‘공포’였습니다. 첫번째 공포는, 눈 앞의 현실을 이야기했을 때, 뾰족한 수를 마련하지 못한 채로 이야기를 종결하게 될 상황에 대한 공포였습니다. 이미 인터넷을 중심으로 형성된 담론들은 폭력적으로 발전됐고, 거대해 보이는 무형의 카운터파트를 떠올리며 토론을 하는 것이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야기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한이 먼저 일었던 것입니다. 두번째 공포는, 내가 착취의 현장에 있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공포였습니다. 저는 제가 가진 다수자성 — 남성, 건강한 신체 등 — 에 바탕하여 성장했고, 밤거리에 대한 당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여성의 삶과, 숱한 계단 앞에서 숱한 좌절감을 느껴야 하는 장애인의 삶을 감응하며 살지 않았기 때문에 감히 발언하기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이는 사실 제가 가진 다수자성을 포기할 수 없는 이면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학과를 지망하는 수험생들에게 이러한 고민을 하도록 하는 것은 역사를 다루는 것이 실은 첨예한 ‘관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말처럼 역사는 ‘사실’을 특정 관점에 따라 해석하고 정리한 것에 불과합니다. 지나가는 매일이 실은 역사이고, 그 매일 중 중요한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을 정하는 것은 결국 관점의 문제인 것이죠. 하지만 역사를 사실 자체로 전달하는 것은 근원적으로 불가능하고,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을 정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가 말하는 ‘공포’는 ‘성찰’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성찰의 힘은 관점에 있어 필수불가결합니다. 내가 역사를 어떻게 보는가는 나 개인의 역사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커츠의 성찰이 공포로 이어지는 것은 발화자로서의 타당성, 다수자성에 대한 포기, 개인차원의 이익 등이 혼종된 하나의 자아가 분열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와 중국의 루쉰의 소설 속 인물들은 끊임없는 성찰과 고민의 연단으로 불안정해 보이지만 그것이 비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큐멘터리 <침묵의 시선>에서 혁명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죽인 인도네시아인들은 “미치지 않기 위해” 죽은 사람의 피를 마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람을 죽이고도 미치지 않는다면 사실 그것이 정말 미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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