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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참여수기

2018년도 제2차 한민족 해외문화권 탐방활동(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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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회 작성일 18-11-0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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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에 한발짝 더 가까이 가게 된 계기



합천고 1학년 유민형

나는 합천군청에 가서 같이 갈 친구들을 만났었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이고 나는 그 친구들이 누구인지도 몰랐으나 차로 이동하면서 친구들이 편해졌다. 내가 중국을 가고자 했던 동기는 이렇다. 나의 꿈은 초등학교 교사이어서 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중국의 문화를 탐방하면서 중국의 교육제도, 중국의 교육관련 역사유물을 볼 수 있을것 같아서 중국 탐방활동에 신청하여 운이 좋게 선발되어서 매우 기뻤다. 역사탐방을 하면서 많은 문화재를 보았는데 이 모든 문화재들은 교육과 관련이 있었다. 왜냐하면 이런한 유물들이나 책들을 통해 우리가 당시 상황을 알수 있는 것은 조상들이 당시 상황을 후세들에게 가르쳐주거나 알려주고 교훈을 주기 위해 만들어 졌다고 생각한다. 즉, 교육적인 목적으로 관련시켜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을 여기에 써보려고 한다.

곡부에 공림이라는 공자와 그 일족의 묘소로서 노목이 펼쳐진 묘역에 10만이 넘는 공자의 자손들의 묘비가 산재된 곳이 인상 깊었다.그 이유는 공자의 후손들이 여기에 묻힐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공자가 대단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수있었기 때문이다. 공자의 업적들을 지금 사람들이 알기에 공씨 가문을 존중해주고 아낀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가이드 선생님이 현재에도 공자의 공씨 가문중에 죽으면 이곳에 묻힐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한편으로는 부러운 감정 또한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공씨가 있는데 그 사람에게 이 곳에 묻힐수 있다는 신비한 이야기를 전해줘야 겠다. 그리고 5.4광장도 인상 깊었다. 왜냐하면 5.4운동을 일으킨 사람이 중국 북경의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 당시 중국의 교육의 시대적 상황을 간접적으로 알수 있었고 우리 또한 대한민국의 상황을 더 좋게 개선할수 있다는 동기부여를 받았기 때문이다. 5.4운동은 1919년 5월 4일에 일어난 사건이며 반제국주의·반봉건주의 혁명운동이고 애국정신을 표출한 운동이다. 가이드 선생님이 중국의 5.4운동과 3.1운동이 유사하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오늘 갔었던 만리장성도 내 기억에 길이길이 남을 것 같다. 그 이유는 나는 다리가 약간 불편한 상태로 태어났고 평소에 많은 운동을 하지 못했던 내가 만리장성의 3번째 꼭대기까지 갔던 것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많은 거리라고 생각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하나의 대단한 자랑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에 대해 가이드 선생님을 통해 알게된 예절문화 또한 인상 깊었다. 보통 중국사람에게 말을 걸때에는 ‘니하오’ 라는 인사말로 시작하여 끝말은 ‘씨에씨에’ 또는 ‘신쿨러’ 라는 말로 말을 끝내야 한다고 한다. 무조건 이렇게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하면 예의바른 사람으로 인식되고 한국의 예절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더불어 중국의 식문화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중국사람들은 식사를 할 때 보통 2~3시간씩 한다는 것이다. 나는 보통 길어봐야 30분만에 식사를 끝내는데 말이다. 중국사람들은 식사 전에 꼭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눈다고 한다. 차는 지방분해성분이 있기 때문에 중국의 기름진 음식을 먹어도 중국사람들이 뚱뚱하지 않은 이유가 차 때문이라고 한다. 차는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마시고 음식을 사는 사람이 식탁에 음식을 모두 채우도록 음식을 사는게 예의라고도 하였다. 우리나라는 보통 보면 김치찌개나 국밥, 한식을 시킬때 우리말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음식이 많이 나온다. 이것은 중국과 약간 유사한 것 같다. 더 인상 깊었던 것들이 많은데 그 중 제일 인상깊었던 것들을 써보았다.

나는 이번 중국 한민족해외문화권 탐방활동을 통해 중국에 대해 더 잘알게 되었고 중국의 교육제도, 교육관련 유물들을 보면서 교육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졌고 나의 꿈인 초등학교 교사에도 한발짝 더 나아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다음에도 이런 좋은기회가 생긴다면 꼭 중국에 한번 더 가서 더 많은 정보를 체험해봤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것을 얻었다

봉화고 1학년 장하은

 

처음에는 많은 걱정을 가지고 중국으로 왔습니다. ‘아, 누가 내 지갑이나 여권을 훔쳐가면 어떡하지? 길은 잃지 않겠지? 중국화장실은 더럽다던데.....’ 그러나 이러한 걱정은 제가 비행기 창문으로 처음 중국땅을 보았을 때 사라져 버렸습니다. 제 눈에 비친 푸른 대륙은 그저 아름답고 찬란할 뿐이었죠. 사실 저는 이 대한민국을 아니 한반도를 벗어나 본 적이 없었습니다. 문화 탐방에 선발되어 처음 중국 땅을 밟고 저희를 친절하게 대해주는 중국의 사람들, 향신료가 들어간 독특한 음식들 모두 저에게는 낯설고 또 신기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의 문화탐방 중 청도시 박물관과 금면왕조서커스, 자금성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데요. 청도시 박물관에서 지금까지의 칭다오 역사를 배우고 책으로만 보던 반량전 같은 화폐와 파란무늬로 장식된 예쁜 도자기를 보니 그것들이 제 마음에 굉장히 와 닿았습니다.

더불어 중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겨서 앞으로 더 공부해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금면왕조 서커스를 보러간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여기 오기전, 금면왕조에 대해 음악선생님께 설명을 들은 적이 있는데, 홍수가 나는 장면에서 실제로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큰 대륙의 거대함을 몸으로 느꼈습니다.화려한 의상과 멋진 동작, 아름다운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져 저는 그 공연에 큰 감명을 받았고 금면왕조 뿐만아니라 다른종류의 중국공연도 꼭 보리라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금성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제가 가장 할말이 많은 것이기도 합니다. 겉모습은 항상 사진으로 많이 보아서 별 기대없이 들어갔었는데 내부의 모습은 정말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습니다. 5개의 문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면 황제가 집무를 보는 곳, 태후 황후가 머무는 곳, 수십 명의 내빈들의 거처 등 엄청난 규모의 화려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내부는 얼마나 넓은지 우리나라의 경복궁보다 훨씬 더 커서 황제는 과연 자금성의 건물을 모두 기억할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7일간 웨이하이의 행복문에서 북경의 자금성까지를 둘러보며 중국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함께 지내며 한국에서는 할 수 없었던 경험들도 해보니 학교수업을 빠지더라도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그런 소중한 것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7박 8일동안 이렇게 소중한 경험을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남기게 해주신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사진도 찍어주시고 항상 저를 챙겨주셔서 또, 탐방장소에 갈 때 마다 옆에서 하나하나 다 설명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중국문화를 즐기며 무려 7박 8일동안 배울 수 있게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야로고 1학년 김영철

 

학교에 공문이 내려왔었다. 중국이나 일본으로 문화탐방을 간다고...우리 학년은 두반 밖에 없어서 우리반이 일본을 신청하고, 옆반이 중국을 신청해서 각 반에서 한명씩 보내준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일본보다 중국을 더 좋아한다. 역사로부터 커져왔던 반일 감정과 당시 발생했던 태풍문제가 나의 선택을 더 확고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중국을 신청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생애 첫 해외여행을 출발했다.

우리가 가는 곳들은 한번씩은 들어봤을 법한 유적지 였다. 예를 들어, 태산. 태산은 우리주변에서 자주 쓰인다. ‘티끌모아 태산, 태산이 높다하되...’와 같이 속담에도 나오고 시조에도 등장하는 태산을 정작 어디 있는지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심지어는 실제로 존재하는 산이라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찾아와 간 곳 중 하나는 적산법화원이었다. 적산법화원은 통일 신라시대 때 장보고가 신라인이 많이 거주하던 산둥반도에 세운 사찰이고 신라원이다. 신라원 중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적산법화원이라고 한다. 한반도에서 활약하던 장보고를 중국이라는 다른 나라 땅에서 보니 기분이 묘했다. 동시에 해외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장보고가 그저 대단하게 느껴질 뿐이다. 적산법화원에서 우리 인솔단장선생님께서 ‘적자생존’ 이라는 말로 농담을 하셨다. 적자생존의 본뜻은 자연에서 가장 잘 적응한 생물이나 동물이 살아남는다는 의미이다. 즉, 강한자가 살아남는다는 말과 비슷하다. 하지만 단장선생님께서 적산법화원을 예시로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원래 적산법화원이 일본의 것인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후에 ‘글’로 작성된 문서들이 발견되면서 장보고, 즉 신라의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져서 결국 살아 남았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글’로 기록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진실이 밝혀질 수 있고 승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도 아!하고 깨달았다. 물론 당시에는 자연도태랑 이상하게 연계해서 싫다고 생각했는데 일리 있는 말이였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기억에 남지도 않고 남이 알 수도 없다. 하지만 그 기억을 글로 남긴다면 기억을 잃어버려 슬퍼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기억이 될 것이다.

마지막 날에 갔던 만리장성도 정말 빼놓을 수가 없다. 이번 여행 중에 가장 기대한 2곳(만리장성, 천안문광장) 중 하나로 정말 기대가 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웅장한 성벽과 수없이 많은 계단, 드높은 건축물들 정말 내 가슴을 자극하고 온몸의 근육이 근질근질하게 만들었다. 만리장성은 기원전 7세기에 건조되기 시작하고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북방민국인 흉노족을 막기위해 장성을 수축, 증축, 연결하며 만든 것이다. 그 중 우리는 거용관의 일부를 걸었는데 5~6칸 밖에 못갔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에서 땀이 흘렀다. 과거에 강제로 불려가서 만리장성을 축조한 수많은 병사들과 노비들의 고역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그들은 무거운 돌도 들었을테니 말이다. 그 아름다운 전경을 30분만 늦게 왔어도 보지 못할 뻔 했다.

그리고 적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갔던 5.4광장, 공묘·공부·공림, 천안문광장, 자금성, 태산, 소어산, 갑오개혁 기념박물관(갑오개혁 기념박물관은 중국과 일본이 관련되어 있어 중국에서는 치욕을 바탕으로한 교육기관으로 쓰이는데 일본에서는 어떻게 묘사하는지 궁금해서 일본을 가고싶게 하는 곳이었다.) 금면왕조 공연 등등 수많은 음식과 중국의 문화를 즐기며 무려 7박 8일동안 배울 수 있게 해준 농어촌청소년육성재단에게 계속 감사할 뿐이다. 우리가 비록 돈을 내고 오지는 않았지만 결코 공짜로 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큰 빛을 내고 온 것이며, 우리의 후배를 위해서 나도 이 은혜를 갚고자 노력할 것이다.

2018년 9월 12일 베이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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